카이로 역사를 공부하다가 저도 모르게 “어?” 하고 멈춘 대목이 있었어요. 우리가 흔히 ‘카이로의 피라미드’라고 부르지만, 사실 피라미드가 세워질 때는 카이로라는 도시 자체가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피라미드는 기원전 2500년경에 만들어졌는데, 카이로라는 도시는 기원후 642년에야 세워졌어요. 그러니까 피라미드가 이미 3,000년 넘게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그 옆에 나중에 카이로라는 도시가 생겨난 거예요. 로마, 아테네를 공부하면서도 비슷한 놀라움을 느꼈었는데, 카이로는 그보다 한 술 더 뜨는 느낌이었습니다. 오늘부터 3편에 걸쳐,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의 흔적을 품은 이 도시를 함께 걸어볼게요.

도시보다 오래된 무덤 — 기자 피라미드의 탄생
기자 피라미드를 이야기할 때 가장 유명한 건 역시 대피라미드예요. 기원전 2560년경, 제4왕조의 파라오 쿠푸를 위해 세워진 이 피라미드는 완공까지 약 20년이 걸렸습니다. 높이는 146.5미터에 달하는데, 놀랍게도 1311년 영국 링컨 대성당이 세워지기 전까지 무려 3,80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어요.
3,800년이라는 숫자를 보고 저는 한참 멍해졌어요. 인류 역사에서 어떤 건축물도 그렇게 오랫동안 최고 높이 기록을 지킨 적이 없었다는 거잖아요. 지금이야 초고층 빌딩들이 몇 년마다 그 기록을 갈아치우는 시대인데, 그 시절 사람들은 무려 4천 년 가까이 그 어떤 건물도 넘어서지 못할 무언가를 만들어낸 거예요.
대피라미드 주변에는 쿠푸를 추모하는 신전 두 곳과, 왕비들이 묻힌 작은 피라미드 세 개가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남쪽으로 내려가면 조세르왕의 계단식 피라미드와 후니 파라오의 굴절식 피라미드가 있는 사카라 유적지도 있어요. 대피라미드보다도 앞선 시대에 만들어진 초기 피라미드들이죠. 이 모든 것들이 지금의 카이로 근교, 나일강 서쪽에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감탄한 것은 우리가 처음이 아니다 — 이미 고대인들에게도 신비였던 유적
여기서 정말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어요. 우리는 흔히 피라미드를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이 만든 신비로운 유적’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고대 로마 사람들에게도 피라미드는 이미 ‘아주 먼 옛날’ 유적이었습니다.
로마 시대 학자였던 대 플리니우스는 서기 1세기,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에 피라미드를 직접 보고 감상평을 남겼어요. 그는 “파라오가 자기 보물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이런 걸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런데 대 플리니우스가 피라미드를 봤던 그 시점에서도, 피라미드는 이미 2,500년도 더 된 유물이었어요.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정말 신기했어요. 로마 글을 쓸 때 저는 로마를 ‘까마득한 옛날 문명’이라고 여기며 감탄했었거든요. 그런데 그 로마 사람들조차 피라미드 앞에서는 우리와 똑같이 “이건 대체 얼마나 오래된 거야” 하며 놀랐다는 거잖아요. 시간이라는 게 이렇게 겹겹이 쌓여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중세시대에는 심지어 피라미드가 성경에 나오는 요셉의 곡물 창고라는 소문까지 돌았다고 하니, 사람들이 이 건축물을 얼마나 신비롭게 여겼는지 짐작이 가요.
나일강이 만든 문명 — 파라오의 이집트
고대 이집트 문명이 이렇게 오랫동안, 이렇게 거대한 규모로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나일강이 있었습니다. 매년 정기적으로 범람하는 나일강이 상류의 비옥한 흙을 실어와 강 주변에 뿌려줬고, 덕분에 사막 한가운데서도 풍요로운 농업이 가능했어요. 나일강 문명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었던 거죠.
이 풍요로운 땅을 다스린 존재가 파라오였습니다. 파라오는 단순한 왕이 아니라, 신의 화신으로 여겨졌어요. 그래서 피라미드 같은 거대한 무덤을 지어, 죽은 뒤에도 영원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준비한 거예요. 기독교인들이 부활을 믿듯, 고대 이집트인들도 죽음 이후의 삶을 믿었습니다. 다만 훨씬 더 물질적인 형태로요. 무덤 안에 온갖 보물과 생활용품을 함께 묻은 것도 그런 믿음 때문이었어요.
저는 이 부분에서 인간이 죽음 앞에서 얼마나 간절했는지가 느껴졌어요. 지금 우리는 죽음 이후를 종교나 철학으로 이야기하지만,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그 믿음을 아예 돌덩이로,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돌덩이로 실체화했잖아요. 그 간절함의 크기가 이 거대한 건축물의 크기와 비례하는 것 같아서, 어쩐지 뭉클했습니다.
습지에 불과했던 땅 — 카이로 이전의 그 자리
그런데 흥미로운 반전이 있어요. 지금 카이로가 있는 자리, 그러니까 나일강 삼각주에 속하는 이 지역은 로마 제국 시대까지만 해도 그저 습지에 불과했습니다. 소규모 취락이 흩어져 있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던 미개한 지역이었어요. 오히려 나일강 건너편 서쪽의 기자 지역에 피라미드가 있었지만, 고왕국 시대가 끝나고 나서는 그 피라미드에 대한 신앙적 믿음마저 퇴색되어 한때는 폐허처럼 방치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아는 화려한 ‘카이로’라는 도시는, 사실 이집트 문명의 심장부가 아니라 오히려 변두리 습지에서 시작된 셈이에요. 이집트 문명의 진짜 전성기는 카이로가 생기기도 전에 이미 지나가 있었던 거죠.
이 사실이 저에게는 묘하게 위로가 됐어요. 지금 화려하고 유명한 곳이 처음부터 특별했던 게 아니라는 것. 별거 아니었던 습지가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했다는 것. 서울 시리즈에서 위례성이 처음엔 작은 마을이었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카이로도 비슷한 시작을 했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시작이 초라했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법은 없다는 걸, 도시 역사를 공부할 때마다 자꾸 확인하게 되네요.
3,000년의 시간을 마주하고 나서
이번 편을 쓰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시간의 스케일이라는 게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지금까지 로마, 아테네, 서울, 교토처럼 오래된 도시들을 여럿 다뤄왔는데, 그 어떤 도시도 카이로 근교 피라미드의 시간 앞에서는 상대적으로 ‘젊은’ 편이었습니다.
카이로라는 도시 자체는 아직 시작도 안 됐는데, 그 옆에는 이미 3,000년 넘게 서 있던 거대한 무덤들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무덤들을 로마인들도, 중세 사람들도, 나폴레옹도, 지금 우리도 똑같이 신비롭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 시간이 이렇게 겹겹이 쌓여서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게, 이번 카이로 시리즈를 시작하면서 가장 크게 다가온 감정이었습니다.
저는 아직 이집트에 가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언젠가 기자의 피라미드 앞에 서서, 대 플리니우스가 2,000년 전에 느꼈을 그 놀라움을 저도 똑같이 느껴보고 싶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조용한 습지가 어떻게 이슬람 세계의 중심 도시로 성장했는지, 그 이야기를 함께 걸어볼게요.
다음 글: 이슬람의 심장 — 아랍 정복부터 맘루크 왕조까지 (시리즈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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