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근현대 역사를 공부하면서, 저는 이 도시가 두 번이나 완전히 사라질 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한 번은 자기 나라 사람들의 손으로, 또 한 번은 외국 폭격기의 폭탄으로요. 지난 편에서 교토가 1,075년 동안 일본의 수도였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긴 시간 동안 이 도시가 늘 평온했던 건 결코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교토가 잿더미가 됐다가 다시 살아나고, 원자폭탄의 목표에서 극적으로 제외되기까지, 그 아슬아슬한 순간들을 함께 걸어볼게요.

10년의 전쟁이 도시를 삼키다 — 오닌의 난
1467년, 교토에서 벌어진 오닌의 난은 이 도시 역사에서 가장 파괴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무로마치 막부의 후계자 자리를 둘러싼 권력 다툼이 두 진영의 전면 전쟁으로 번졌고, 이 싸움이 무려 10년 넘게 이어졌어요.
전쟁이 벌어진 곳이 다름 아닌 교토 시내였다는 게 이 사건의 비극이었습니다. 헤이안 시대부터 쌓여온 수많은 사찰과 저택, 유서 깊은 건축물들이 이 10년의 전란 속에서 불타 없어졌어요. 지금 우리가 사진으로 보는 교토의 오래된 목조 건물들 대부분이 사실은 이 오닌의 난 이후에 다시 지어진 것들입니다. 헤이안 시대 원본 건축물은 생각보다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거예요.
저는 이 사실을 알고 나서 조금 허탈한 기분이 들었어요. 외적의 침입이 아니라, 같은 나라 사람들끼리의 권력 다툼으로 천 년 가까이 쌓아온 유산이 잿더미가 됐다는 거잖아요. 베를린 시리즈를 쓸 때 다뤘던 2차 세계대전의 폐허는 그래도 ‘외부의 적’이라는 명확한 원인이 있었는데, 이건 내부의 다툼이 스스로를 파괴한 경우니까요.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가장 아픈 파괴는 종종 바깥이 아니라 안에서 시작된다는 걸 자꾸 확인하게 됩니다.
정신적 수도로 남다 — 도쿄 천도 이후의 교토
1868년,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면서 일본은 또 한 번 큰 변화를 맞이합니다. 메이지 천황은 에도(지금의 도쿄)를 새로운 수도로 정하고 그곳으로 옮겨갔어요. 1,075년 동안 이어져온 교토의 수도 지위가 마침내 막을 내린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도쿄로 수도를 옮긴 이후에도 일본인들에게 교토는 여전히 ‘정신적 수도’로 남아있었다는 점이에요. 메이지 천황 다음의 다이쇼 천황과 쇼와 천황의 즉위식도 교토에서 치러졌고, 메이지 천황 본인도 세상을 떠난 뒤에는 유해가 교토로 돌아와 안장됐습니다. 실질적인 정치와 행정은 도쿄로 옮겨갔지만, 일본인들의 마음속 뿌리는 여전히 이곳에 있었던 거죠.
저는 이 부분에서 다시 한번 지난 편에서 말씀드렸던 ‘이원적 구조’가 떠올랐어요. 권력의 실체는 도쿄로 옮겨갔지만, 상징적인 의미는 교토에 그대로 남았다는 것. 조선의 한양이 왕조가 무너지면서 그 역할이 완전히 끝났던 것과는 확실히 다른 방식이었어요. 같은 동아시아라도 도시가 역사를 이어가는 방식이 이렇게나 다르다는 게, 서울과 교토를 함께 공부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부분이었습니다.
목표 리스트 1순위에서 제외되다 — 교토와 원자폭탄
교토 역사에서 제가 가장 소름 돋았던 부분은 바로 이 대목이었어요. 2차 세계대전 말기,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 목표 선정 위원회가 처음 추천한 도시 목록에 교토가 1순위로 올라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히로시마보다도 먼저요.
그런데 당시 미국 전쟁부 장관이었던 헨리 스팀슨이 이 결정에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스팀슨은 젊은 시절 여러 차례 교토를 방문한 적이 있었고, 그곳의 문화유산에 깊이 감명받았던 인물이었어요. 일설에는 신혼여행지가 교토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데, 이 부분은 스팀슨 본인이 나중에 부인하기도 해서 정확한 사실은 아닐 수 있습니다.
공식적인 이유는 조금 더 냉정했어요. 교토는 헤이안 시대부터 이어진 일본의 정신적, 문화적 중심지였기 때문에, 이곳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면 일본 국민의 반발이 너무 커져서 전후 처리가 어려워질 거라는 정치적 판단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소련과의 대립을 예상하던 미국은 일본이 지나치게 반미 감정에 사로잡혀 소련 쪽으로 기울어질 가능성까지 우려했다고 해요.
결국 원자폭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고, 교토는 목표 목록에서 빠졌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정말 복잡한 감정이 들었어요. 한 사람의 개인적인 애정과, 냉정한 정치적 계산이 겹쳐서, 결과적으로 천 년의 도시가 파괴를 피했다는 거잖아요. 그 반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그 운명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고요. 어떤 도시는 우연과 계산이 겹쳐 살아남고, 어떤 도시는 그러지 못한다는 이 냉혹한 역사의 방정식 앞에서, 마음이 참 복잡해지더라고요.
시간이 멈춘 듯한 거리 — 기온과 게이샤 문화
이렇게 전쟁의 파괴를 피한 덕분에, 교토는 지금까지도 옛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일본 도시로 남아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상징적인 곳이 기온 지역이에요. 좁은 골목마다 전통 목조 가옥이 늘어서 있고, 저녁이 되면 지금도 게이코(교토식으로 게이샤를 부르는 말)와 마이코가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교토에서 열리는 축제들의 역사도 놀라워요. 544년부터 시작됐다는 아오이 마쓰리, 869년부터 이어져온 기온 마쓰리까지,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매년 반복되어온 행사들이 지금도 그대로 열리고 있습니다. 1,5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진 축제가 있다는 게,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긴 연속성이에요.
흥미로운 건 교토와 한반도의 오래된 인연도 곳곳에 남아있다는 점이에요. 교토에는 백제 성왕을 모신 히라노신사가 있습니다. 서울 시리즈에서 위례성 백제 이야기를 다뤘었는데, 그 백제의 흔적이 이렇게 멀리 교토까지 남아있다는 걸 알고 나니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이렇게 오래전부터 서로 얽혀 있었다는 걸, 도시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자꾸 발견하게 됩니다.
시리즈를 마치며 — 두 얼굴의 도시, 교토
교토 시리즈를 모두 쓰고 나니, 이 도시가 정말 ‘두 얼굴’을 가진 도시라는 생각이 들어요. 헤이안쿄라는 계획도시로 태어나 화려한 귀족 문화를 꽃피웠던 얼굴과, 오닌의 난과 원자폭탄이라는 파괴의 위기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생존의 얼굴.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지금은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관광지가 된 얼굴까지요.
무엇보다 이번 교토 시리즈를 쓰면서 서울 시리즈와 자꾸 비교하게 됐어요. 같은 동아시아의 오래된 수도인데도, 서울은 여러 번 이름과 주인이 바뀌며 힘겹게 이어져온 도시였고, 교토는 상징성 하나로 천 년을 지켜온 도시였습니다. 도시가 살아남는 방법이 이렇게나 다양하다는 걸, 두 도시를 나란히 공부하면서 새삼 깨달았어요.
저는 아직 교토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기온의 좁은 골목을 걸으며, 천 년 넘게 이어져온 축제와 그 시간의 무게를 느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가 두 번이나 사라질 뻔했다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지금 눈앞의 풍경이 얼마나 기적 같은 결과물인지 실감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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