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탄생 — 센강 위의 작은 섬에서 시작된 도시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샹젤리제 거리. 파리를 떠올리면 화려한 풍경들이 먼저 떠오르죠. 그런데 이 거대한 도시가 처음엔 센강 위에 떠 있는 작은 섬 하나에서 시작됐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파리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이 바로 이거였어요. 지금부터 3편에 걸쳐 파리의 시간을 함께 걸어볼 텐데, 오늘은 그 첫걸음, 파리의 탄생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파리 역사 시테섬 센강

강 위의 작은 섬, 모든 것의 시작 — 시테섬

파리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짚어야 할 곳이 있습니다. 바로 시테섬이에요.

기원전 250년에서 225년 사이, 켈트족의 한 갈래인 파리시족이 센강변에 정착하면서 다리와 요새를 짓고, 동전을 주조하고, 다른 강 정착지들과 거래를 시작했습니다. ‘파리’라는 이름이 바로 이 파리시족에서 유래했어요.

이들이 자리 잡은 곳이 바로 시테섬이었습니다. 섬이라는 지형이 자연스러운 방어막이 되어줬고, 강을 이용한 교역도 편리했거든요. 실제로 ‘시테’라는 이름은 라틴어 ‘키비타스(civitas)’에서 왔는데, 이건 영어 단어 ‘city(도시)’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파리의 시작이 곧 ‘도시’라는 단어의 뿌리와 맞닿아 있는 거예요.


로마가 남긴 이름 — 루테티아

기원전 52년, 로마 장군 티투스 라비에누스가 이끄는 군대가 파리시족을 정복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자신의 전기에서 섬 주민들이 로마에 항복하기보다 차라리 도시를 불태워버렸다고 적었어요. 그만큼 자존심이 강한 부족이었던 거죠.

로마인들은 이 지역에 루테티아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정식 명칭은 ‘루테티아 파리시오룸’, 즉 ‘파리시족의 루테티아’라는 뜻이었어요. 루테티아라는 단어의 어원은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켈트어로 ‘늪, 습지’를 뜻한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쥐’를 뜻한다는 설입니다. 어느 쪽이든 지금의 화려한 파리와는 거리가 먼 이름이죠.

1세기에 루테티아는 본격적인 로마 도시로 발달하면서 센강 좌안까지 영역을 넓혔습니다. 지금도 파리 5구역에는 루테티아 시절 세워진 원형 극장 유적이 남아 있어요. 로마인들은 포럼, 신전, 공중목욕탕까지 지으며 이곳을 제대로 된 도시로 키워나갔습니다.


섬으로 다시 돌아가다 — 중세 파리의 시작

번영하던 루테티아에 위기가 찾아온 건 3세기였습니다. 275년, 알레만니족의 침략을 시작으로 게르만족의 대이동에 따른 공격이 끊이지 않았어요.

결국 주민들은 강 건너 넓은 옛 도심을 포기하고 다시 시테섬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섬을 요새화한 거예요. 이때 만들어진 성벽이 파리 최초의 성벽이었습니다. 성벽을 쌓기 위해 옛 도심의 석조 건축물들을 헐어다 썼다고 하니, 지금 보면 좀 아쉽기도 하네요.

이렇게 옛 도시 루테티아가 황폐해지고 시테섬에 새로운 도시가 자리잡으면서, 도시 이름도 ‘파리시족의 도시’라는 뜻의 ‘키비타스 파리시오룸’으로 바뀌었습니다. 3세기에서 5세기 사이에는 간단히 ‘파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지금 우리가 아는 그 이름이 등장한 거죠.

이후 중세 파리는 시테섬을 중심으로 한 요새 도시로 한동안 자리를 지켰습니다. 화려한 궁전과 대성당이 들어서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도시의 뼈대는 이때 이미 만들어진 셈입니다.


한 왕의 선택이 만든 수도 — 클로비스 1세와 파리

작은 요새 도시였던 파리가 진짜 ‘수도’로서의 운명을 맞이한 건 5세기 말이었습니다. 그 주인공은 클로비스 1세예요.

클로비스는 게르만족의 한 갈래인 프랑크족의 왕이었습니다. 481년, 16세의 나이로 왕위에 오른 그는 486년 수아송 전투에서 북갈리아를 지배하던 로마 세력을 격파했어요. 이후 차근차근 주변 부족들을 통합하면서 마침내 프랑크 왕국을 세웠습니다.

여기서 클로비스가 내린 결정 하나가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바로 수도를 수아송에서 파리로 옮긴 것입니다. 511년, 그는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그가 세운 메로빙거 왕조의 중심이 바로 파리였습니다.

클로비스의 또 다른 중요한 선택은 기독교로의 개종이었어요. 아내 클로틸드의 영향을 받아 가톨릭으로 개종한 그는 로마 교황의 지지를 얻고, 동시에 로마 문화를 받아들였습니다. 게르만족 왕이 가톨릭으로 개종한 건 당시로선 상당히 파격적인 선택이었는데, 이 덕분에 프랑크 왕국은 로마 교회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며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요새 도시에 불과했던 파리가 왕국의 수도가 되는 순간, 비로소 파리는 단순한 거주지를 넘어 권력과 신앙의 중심지로 거듭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라는 정체성이 바로 이 시점에서 첫 단추를 끼운 셈이에요.


파리의 첫걸음을 돌아보며

파리의 시작을 공부하면서 느낀 건, 지금의 거대하고 화려한 도시도 결국 강 위의 작은 섬, 한 줌의 사람들에게서 출발했다는 사실이에요. 시테섬이라는 작은 땅덩이가 없었다면, 지금의 파리도 없었을 겁니다.

저도 언젠가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 서서, 그 발밑에 깔린 2,000년이 넘는 시간의 층위를 느껴보고 싶습니다. 화려한 에펠탑보다 어쩌면 이 작은 섬이 파리의 진짜 심장일지도 모르겠어요.

다음 편에서는 이 작은 도시가 어떻게 혁명의 무대가 되고, 또 어떻게 지금의 화려한 모습으로 바뀌게 됐는지 이야기해볼게요.


다음 글: 파리를 바꾼 혁명 — 바스티유에서 에펠탑까지 (시리즈 2편)


🔗 관련 글